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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구가 등장했다고 해서 이전에 사용하던 물건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도 종이 수첩과 스마트폰 메모를 함께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면서도 중요한 내용은 종이에 출력해 읽기도 한다. 새로운 매체가 편리하더라도 익숙한 도구에는 나름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록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제지 기술이 유럽에 전해진 뒤 종이는 점차 중요한 기록 매체가 됐다. 그렇다고 종이가 등장한 순간 기존의 양피지가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종이와 양피지가 함께 사용됐다.

왜 사람들은 새로운 종이를 두고 계속 양피지를 사용했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 보면 단순한 종이의 전파사를 넘어 당시 사람들이 기록물의 가격과 내구성, 용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유럽에 종이는 어떤 경로로 들어왔을까

앞선 글에서 살펴봤듯 중국에서 발전한 제지 기술은 중앙아시아와 이슬람 세계로 점차 확산됐다.

그 이후 종이와 제지 기술은 이슬람 세계와 유럽이 만나는 여러 접점을 통해 유럽 지역으로도 퍼져 나갔다.

특히 이베리아반도와 시칠리아 같은 지역은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기술이 접촉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지중해를 통한 상업 활동 역시 종이와 관련 기술이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유럽에서 종이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완성된 종이를 수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종이를 계속 사용하려면 가까운 곳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중세 후기에 이르면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여러 지역에서 제지업이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의 **파브리아노(Fabriano)**는 유럽 제지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도시다.

13세기 무렵 파브리아노는 중요한 제지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곳의 제지업자들은 기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 과정과 품질을 개선해 유럽의 제지 기술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종이의 원료는 지금과 달랐다

현대 종이 공장을 생각하면 거대한 목재 더미나 목재 펄프가 먼저 떠오를 수 있다.

그러나 중세 유럽의 종이는 현대의 목재 펄프 종이와 원료부터 달랐다. 당시 유럽 제지업에서는 주로 헌 천에서 얻은 섬유가 중요한 원료로 활용됐다.

특히 리넨이나 삼과 같은 식물성 섬유로 만든 천은 종이 제작에 이용할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낡아서 더 이상 옷이나 생활용 천으로 사용하기 어려워졌다고 해서 가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적절하게 분류하고 처리하면 종이를 만드는 원료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알고 중세의 제지 과정을 상상해 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누군가 입었던 옷이나 생활에 사용했던 천이 수명을 다한 뒤 제지업자의 손으로 넘어간다. 천은 잘게 나뉘고 여러 과정을 거쳐 섬유 상태로 풀어진다. 그 섬유를 물에 분산시킨 뒤 종이를 뜨고 건조하면 전혀 다른 물건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종이 위에 상인이 거래 내용을 적거나 학자가 글을 남길 수도 있었다.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재료 순환이 이루어진 셈이다.

종이의 역사를 살펴볼 때 완성된 책만 보는 것보다 종이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어떤 물건이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당시 생활상이 훨씬 구체적으로 보인다.

종이가 있는데도 양피지를 계속 사용한 이유

종이가 유럽에 들어왔는데도 양피지는 오랫동안 중요한 기록 재료로 남았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익숙함이다.

양피지는 이미 오랜 기간 문서와 책 제작에 사용된 재료였다. 필경사와 문서 작성자들은 양피지를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기록물을 만드는 재료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구성 역시 중요한 요소였다.

잘 만들어진 양피지는 튼튼하다. 보관 상태가 좋다면 오랜 기간 기록을 유지할 수 있다. 중요한 종교 문서나 법률·행정 문서, 장기간 보존할 필요가 있는 기록에는 이러한 특징이 매력적일 수 있었다.

반면 초기 유럽 사회에서 종이는 상대적으로 새롭고 낯선 재료였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서는 종이를 공식적인 기록에 사용하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새로운 매체가 기존 매체와 같은 신뢰를 얻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양피지가 모든 면에서 우월했던 것도 아니다.

양피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물의 가죽을 확보하고 여러 단계로 가공해야 한다. 많은 페이지가 필요한 책 한 권을 제작하려면 상당한 양의 재료가 필요했다.

종이 생산이 확대되고 공급이 안정되면서 종이는 다양한 일상 문서를 만들기에 점점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었다.

결국 두 재료의 관계는 단순히 ‘좋은 종이가 나쁜 양피지를 대체했다’는 식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무엇을 기록하고 얼마나 오래 보관할 것인가에 따라 적합한 재료가 달랐던 것이다.

제지소가 자리 잡으려면 물도 중요했다

옛 제지업을 살펴보면서 눈여겨볼 만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물이다.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많은 물이 필요하다.

원료를 처리하고 섬유를 물속에 분산시키며 한 장씩 떠내는 과정에서 물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전통적인 제지업과 지역 환경의 관계를 살펴보면 물을 빼놓기 어렵다.

유럽의 제지업에서는 수력을 생산 과정에 활용하는 기술도 발전했다.

헌 천 등의 원료를 섬유 상태로 처리하려면 상당한 노동이 필요한데, 물레방아에서 얻은 동력을 활용하면 일부 작업을 기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이 대목은 종이를 단순한 문구류가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보게 한다.

제지소를 운영하려면 원료를 확보해야 하고 물도 필요하다. 종이를 만드는 장인이 있어야 하며 완성된 제품을 구입할 사람과 시장도 필요하다.

따라서 제지업의 성장은 기술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도시의 성장과 상업, 운송망, 원료 공급 등이 함께 연결되어 있었다.

종이에서 보이는 희미한 무늬, 워터마크

중세 유럽 종이에서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워터마크(watermark)**다.

종이를 빛에 비추었을 때 다른 부분보다 밝거나 어둡게 보이는 문양을 본 경험이 있다면 워터마크의 원리를 어느 정도 떠올릴 수 있다.

전통적인 수제 종이는 틀을 이용해 물속의 섬유를 건져 올려 만든다. 이 틀에 철사 등으로 문양을 만들어 두면 해당 부분의 종이 두께에 차이가 생기면서 빛에 비추었을 때 특정한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

제지업자들은 다양한 문양을 사용했다.

오늘날 연구자들에게 워터마크는 단순한 장식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오래된 문서의 종이를 조사할 때 워터마크의 형태와 제작 특징을 다른 자료와 비교하면 종이가 만들어진 지역이나 시기를 연구하는 단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종이 한 장이 그 위에 쓰인 글뿐 아니라 자신의 제작 과정에 관한 정보까지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박물관에서 고문서를 볼 때 글씨만 읽으려고 했던 경험이 있다면 다음에는 종이 자체도 한번 살펴볼 만하다. 종이의 색과 두께, 표면, 접힌 흔적 같은 물질적 특징도 그 문서가 지나온 시간을 보여준다.

종이의 확산과 기록의 일상화

유럽에서 종이 생산이 확대되면서 종이를 접할 수 있는 범위도 점차 넓어졌다.

상업이 성장하면 거래를 기록해야 한다. 도시 행정이 복잡해지면 각종 문서가 필요하다. 대학과 학문 활동이 발전하면 읽고 기록할 자료에 대한 수요 역시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비교적 많은 기록을 만들 수 있는 종이는 유용한 매체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이가 등장했다고 곧바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책을 소유하고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중세의 책은 여전히 많은 노동을 필요로 했다. 인쇄술이 널리 활용되기 전에는 책의 내용을 사람이 직접 베껴 쓰는 과정도 필요했다.

따라서 종이의 보급과 책의 대중화는 같은 사건이 아니다.

하지만 종이 공급이 늘어난 것은 더 많은 문서를 만들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제공했다. 행정 기록이나 상업 문서처럼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기록을 남기는 데에도 종이가 점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이런 변화가 축적된 뒤 유럽의 기록 문화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가 찾아온다.

바로 인쇄술의 확산이다.

새 매체는 옛 매체를 한순간에 없애지 않는다

중세 유럽의 종이 역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자리 잡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종이는 유럽에 전해졌지만 양피지를 즉시 밀어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기록의 목적과 비용, 내구성, 관습 등을 고려해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했다. 그 사이 유럽 곳곳에서 제지업이 성장했고 종이를 생산하는 기술도 발전했다.

이 과정을 현재의 생활과 비교해 보면 의외로 익숙하다.

컴퓨터가 등장한 뒤에도 종이는 사라지지 않았고, 스마트폰이 보급된 뒤에도 종이 수첩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새로운 기록 매체가 이전 매체를 완전히 제거하기보다는 각자의 장점에 따라 역할을 나누는 경우가 많다.

중세의 종이와 양피지도 그런 공존의 역사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종이가 충분히 생산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자 다음 변화의 조건도 갖춰지기 시작했다. 한 장씩 손으로 베끼던 기록물을 훨씬 빠르게 복제할 수 있는 기술과 종이가 만나게 된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구텐베르크 시대의 인쇄술과 종이가 만나면서 책 제작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인쇄된 책이 이전의 필사본과 어떤 차이를 가졌는지 살펴본다.

 

FAQ

Q1. 종이가 유럽에 들어오자 양피지는 바로 사라졌나요?

아니다. 종이와 양피지는 상당한 기간 함께 사용됐다. 양피지는 이미 익숙한 기록 재료였으며 내구성 등의 장점도 있었다. 종이 생산이 확대된 뒤에도 문서의 중요도와 목적, 지역의 관습 등에 따라 서로 다른 기록 재료가 사용됐다.

Q2. 중세 유럽의 종이는 나무로 만들었나요?

오늘날처럼 목재 펄프를 중심으로 종이를 만드는 방식과는 달랐다. 중세 유럽에서는 리넨이나 삼과 같은 식물성 섬유로 만들어진 헌 천이 중요한 제지 원료로 활용됐다. 헌 천을 처리해 섬유를 얻은 뒤 이를 이용해 종이를 만들었다.

Q3. 오래된 종이에 있는 워터마크는 무엇인가요?

종이를 빛에 비추었을 때 나타나는 문양이나 표시를 말한다. 전통적인 종이 제작 과정에서 종이를 뜨는 틀에 만든 문양으로 인해 종이 두께에 차이가 생기면서 표시가 나타날 수 있다. 역사적인 종이의 워터마크는 오늘날 오래된 문서와 종이의 제작 시기나 출처를 연구하는 단서로도 활용된다.